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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질라라비/202004] 꿈과 삶, 권리가 공존하는 영화 현장을 위해_안병호 위원장

영화노조 / 2020-04-24 15:23:08 / 공개글

꿈과 삶, 권리가 공존하는 영화 현장을 위해

안병호 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질라라비/202004]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2005년 12월 설립되었다. 2001년,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문제의식을 가진 스태프들이 ‘비둘기둥지’라는 다음카페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출발이었다. 조명, 연출, 촬영 등 부문별로 도제식 시스템이 자리 잡은 현장의 스태프들은 ‘형들을 따라’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노동조합의 꾸준한 활동은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었다.

영화 현장에 표준근로계약서가 도입된 것은 2014년 이후다. 노동시간, 임금, 휴일 및 휴가, 교육, 4대보험 가입 등이 명시된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 상업영화계의 관행으로 안착되기까지,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임금체불 및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서 착취당했다. 영화노조의 캠페인과 표준근로계약서 효과로 노동조건의 기본선은 어느 정도 제고되었지만, 한편에서는 이를 흔드는 시도 역시 나타나고 있다.

영화노조는 영화 현장의 노동권 증진을 위한 활동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및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 문화예술노동연대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등에도 함께하고 있다. 영화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노동조합에 함께하며 대의원, 촬영지부 부지부장을 거쳐 위원장으로 세 번째 임기를 수행 중인 안병호 동지를 2월 27일 충무로에 위치한 영화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및 정리: 신순영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표준근로계약서 효과와 현장의 변화


영화노조가 제작사랑 단체협약을 처음 체결한 게 2007년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이행된 건 2014년 이후예요. 그전까지는 근로기준법 적용도 안 됐고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냥 선의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식이었어요. 그러다가 투자사가 들어와서 노사정이행협약이 체결되고, 돈줄 갖고 있는 사람의 입김이 작용하니까 달라지기 시작한 측면이 있어요. 보통 극장에 걸려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영화들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소위 말하는 저예산영화, 10억 미만의 영화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용되지 않고요.

그러면서 이제는 계약서에 대한 이해나 근로기준법에 대한 학습도 높아졌어요. 새롭게 현장에 들어오는 이삼십대 스태프들도 그런 내용들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 같아요. 요즘 개봉하는 한국영화 엔딩크레딧에는 노무사 자문이 들어가요. 제작사들이 다 노무사 자문을 받기 시작했고, 기존에 하던 것들 중에 법에 없는 게 담겨져 있으면 빼려고 하기도 하죠. 안 좋은 조건부터 경험한 스태프들은 이런 과정에 노조의 역할이 컸다는 걸 알지만, 젊은 스태프들은 지금의 조건을 기본선으로 인식하기도 하죠. 그래서 늘 모든 사람에게 새롭게 알리고 조직하는 일이 필요해요.



여전히 쟁점은 노동시간과 임금


영화 현장은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정해놓은 바가 있고, 표준근로계약서가 안착되면서 밤샘촬영은 거의 사라졌어요. 1일 1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고, 넘을 경우 근로자대표나 스태프와의 합의하에 추가적인 수당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어요. 어쨌든 12시간이 비교적 명확하게 지켜지는 상황이 된 건데, 최근에는 12시간 초과수당에 대한 삭감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요. 제작사들이 그 부분을 빼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거나, 한편으로는 통상주급액이라고… 촬영이 있든 없든 계약기간 중에는 최소금액을 보장해야 한다고 정한 게 있는데, 그걸 빼면서 휴업수당을 넣기도 하고요. 촬영이 없더라도 작업 준비는 계속되기 때문에 휴업이라고 할 수 없는데. 어쨌든 노동시간이 줄었으니까 임금도 줄이려고 하는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고, 그래서 12시간이 더 구체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기도 해요.

준비단계 업무를 하는 미술팀, 연출팀, 제작팀 같은 경우에는 촬영시간 외의 노동시간은 다 빠져있고 실질적으로 계산이 안 돼요. 심지어 포괄임금으로 퉁치려는 회사도 있어요. 인력 충원이나 업무 분장에 대한 고민보다는 기존 관행대로, 어차피 해야 되는 일이니 그냥 하라는 식인 거죠. 촬영시간만 보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몇몇 부서들은 체감이 덜한 상황이에요.

저희가 현재 임금 협상은 계속 못하고 있어요. 표준근로계약서를 통해서 노동시간은 정립되었으니 임금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하는데, 조직화가 되지 않으면 쉽지 않아요. 예전에는 부서별 임금이 있었는데 ‘최저임금 1만 원’ 정책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우선은 법정 최저임금이 기준이 됐어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임금이 나눠지다 보니 오히려 연차가 올라갈수록 임금 보전이 안 되는 문제들도 발생하고, 기준 마련이 필요한 거죠. 그런데 지금 부서별로도 그렇고 통용되는 임금이 좀 다 달라서, 저희의 요구안이 준비되지 못했어요.

건설노임을 롤모델로 삼아서 부서별 표준임금을 만들려고 하는데, 부서별로 조직화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예요. 영화노조 내에 촬영, 조명, 연출, 제작, 미술, 분장, 소품, 의상 등의 직능별 지부가 있고, 최근에는 후반사운드지부가 결성됐어요. 지부 활동을 활성화하면서 노조의 표준임금안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감독급 스태프도 노동자’ 판결의 의미와 영향


작년 10월에 스태프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고, 지난 1월에는 같은 현장 감독급 스태프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1심 판결이 나왔어요. 감독급은 영화 시작될 때 첫 번째로 나오는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요. 오랜 조수 생활을 거쳐서 힘겹게 얻어낸 자리라고 생각하고, 소위 자기 작품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임금을 떼여도 그냥 앞으로 이 회사랑 안 하면 되지, 액땜했다 치자… 하는 분위기가 많고, 회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 다음 작품 연계에 유리하니까 현장의 어려움이나 부조리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는 측면이 컸어요.

1월에 나온 판결은, 2016년에 촬영 중이던 한 영화가 중간에 중단되면서 엎어지고, 제작사가 수개월간 임금체불을 해결하려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니까 참다못해 소송을 한 거예요. 감독급 스태프들이 당사자로서 나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라는 걸 밝힌 거죠. 소송에 미술감독도 참여하고 있어서 미술감독조합에 입장을 내달라고 요청했고, 근로자성 인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된다는 의견이 오갔어요, 물론 현장의 전반적인 기류는 아니지만 확실히 달라진 지점이에요.

지금의 노동시간이나 나아진 조건들은 조수급 스태프들, 노동조합으로 인해서 만들어졌어요. 같은 현장에 있는 한 감독급들도 노동시간의 적용을 똑같이 받아요. 감독급이 조수급들을 추천해서 개별계약을 하는 구조여서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내기에 수월한 측면도 있었지만, 현장을 바꾸기 위한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게 필요하죠. 부문별 감독조합들이랑 구체적으로 접촉을 해서 일단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걸 찾으려고 해요.

 


달라진 현장에서, 새롭게 고민하는 조직화


표준근로계약서나 단체협약 효과가 어느 정도 안착됐기 때문에 조직력에 비해서 노동조합의 위상이 좀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지만, 조직된 숫자로만 보면 영화산업 전체 스태프의 1% 정도예요. 초기에 조직화보다는 시스템이나 법 정비에 노력을 기울인 측면이 있어요. 임금은 적고 맨날 밤새고 쉬는 날도 없으니까, 조합원이든 아니든 다 통용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부터 출발하자는 거였고 현재 수준에 온 건데… 그렇다 보니 오히려 조직화는 또 다른 이슈로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생긴 거죠.

최근에는 단체협약이나 표준근로계약서에 대해 스태프들도 잘 알게 되면서 현장에서 분명한 의사 표현을 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당일날 갑자기 12시간 넘게 촬영하자고 할 때 스태프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촬영을 못하고, 제작사는 어쨌든 불편한 거죠. 반대한 스태프가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이 룰이 노조를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조합원을 고용하면 피곤할 거라는 생각이 있어요. 예전과 달리 계약하려는 스태프가 조합원인지를 확인하려는 제작사도 있고 노조에 대해 좋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기도 해요. 스태프 입장에서는 노조 가입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날 수도 있는 거죠. 또 노조에 가입 안 해도 내 임금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스태프들도 있고, 노조는 조수급 스태프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여전히 존재해요.

조직화는 노동조합의 중요한 과제이고, 스태프들에게 통하는 말로 다가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초창기에 그런 고민을 했었어요.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 내용이라면, 법문을 그대로 알려주는 거랑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알려주는 방법이 있는데, 저는 후자쪽을 선택하고 싶은 거예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선택한다는 건, 그 사람과 어떻게 같이할 건지와도 통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팟캐스트도 하고 페이스북, 밴드, 텔레그램, 카톡도 하고 막 여러 가지를…. (웃음) 스태프들 조직하는 데에서도, 그들한테 맞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이 되고 ‘좋은 농담’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영화 스태프들과 ‘사회’를 연결하는 노동조합의 역할


예전에는 영화 스태프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많이 고민하거나 닿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김용균 투쟁이나 콜트콜텍, 마사회 투쟁이나… 노조가 함께하는 주요한 투쟁에 대해서는 조합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소식을 공유해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다른 데도 비슷할 것 같기는 하지만, 조합원들이 다른 노동자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할까 고민이 컸었죠. 그런데 노조를 통해서 모르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알게 되어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는 조합원들이 소수이지만 있고, 최근에는 텔레그램 뉴스룸에 소식들을 올리는데, 본 사람 숫자가 생각보다 되게 많더라고요.

우리 조합원들도 이만큼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있고, 사람이 다치고 죽는 일에는 다들 공감을 하는구나 생각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려고 해요. 영화노조 페이스북에도 현장 이야기와 더불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나 문화예술노동연대 소식을 꾸준히 전해요. 어떤 때는 영화 얘기 안 하고 노동자, 노동조합 얘기만 한다고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노동조합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조합원들이나 혹은 영화 스태프들도 페이스북을 팔로우한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이런 얘기를 하는구나, 뉴스에서 보던 일들이 사실 이런 거구나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영화계도 예외가 아니었던, 성폭력과 적폐의 그늘


영화계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미투운동이 일어났을 때 영화노조도 함께 목소리를 냈어요. 대표적인 사건 중 김기독 감독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제대로 다투지 못해 형사사건이 안 됐고, 남배우A건은 2018년에 대법원에서 영화 촬영 중에 발생한, 연기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합의되지 않은 행위가 성추행이라는 취지로 유죄판결이 됐어요. 현장에서의 경각심은 많이 확산된 것 같아요. 한편 약간의 비아냥이나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펜스 룰 같은 것도 존재하는 것 같고요.

영화계에는 몇 년 전에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라는 기구가 설립되어서, 성평등 교육도 하고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 관련해서 신고 접수를 받기도 해요. 제작사에서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을 의무화했는데, 관습적으로 진행되거나 중복되는 측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든든에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진행하려는 준비도 되고 있어요. 노조에서도 요구하고 있지만, 어쨌든 영화계 내에서 성희롱‧성폭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교육해야 되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들 갖게 됐어요.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는 영화노조 전 조합원이 다 포함됐어요. 직접적인 피해가 확인된 바는 없지만, 내 이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명단에 올라가고 공공연하게 알려진다는 건 온당하지 않은 일이죠. 조합원들은 유명인이 아니지만, 9,500명쯤 되는 명단을 작성하기 위해 숫자로 동원된 측면도 있어요. 어디에 서명했으니까 다 갖다 넣자는 식으로… 불쾌하고 황당한 일이죠. 명단이 처음 공개됐을 때 스태프들이 서로 이름 찾아보고 근황을 확인하는 웃픈 일도 있었죠.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응하는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에 저희도 참여했고요. 진상조사위원회 활동과 백서 작업이 마무리되고, 현재는 문체부가 제도개선 권고안을 마련해서 이행에 관한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책임자들이나 당사자들은 처벌된 사례가 거의 없고, 김기춘‧조윤선에 대한 판결도 직권남용죄는 인정되지 않고 있죠. 심지어 최근에는 당시 문체부 차관으로 블랙리스트 실행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 계원예대 총장으로 가서 문제가 되고 있어요. 조금 잠잠하다 싶으니까 반성 없이 공무나 공직으로 복귀하는 거예요. 블랙리스트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많은 문제들이 그런 것 같아서 씁쓸하죠.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예전에는 영화 만드는 스태프들은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 함께하면서 여러 동지들을 보니까, 그냥 똑같거나 우리보다 더하거나 그렇더라고요. 플랫폼 노동자들은 기존의 노동법적 보호 아래 들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빼려는 시도들이 계속 있었던 거고,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창작이라는 걸 앞세워서 가려놓는 거였고. 그래서 비정규직 동지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 생각을 요즘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최고은법’, ‘김용균법’ 같은 법들이 만들어졌지만, 실제 당사자들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지금도 개선하려는 여지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팟캐스트 ‘바꿀래오’를 하면서도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되는 게, 요즘 비정규직들은 하나같이 뺏어가지 말라는 투쟁을 한다는 거예요. 어느 사업장 게스트들이나 하는 말씀이, 다 기존의 것을 회사가 어떤 식으로든 뺏어가려고 해서 싸운다는 거예요. 최저임금도 마찬가지고, 저희 같은 경우도 지금 표준근로계약서에 명시한 12시간 초과수당을 빼려고 하는 거고요.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어요. 다른 동지들도 생각하고 있을 텐데, 다들 비슷한 싸움을 각자 하고 있는데 그것만도 너무 벅찬 상황이라… 그걸 함께 싸워나갈 이슈로 만들 겨를이 없는 게 안타까운 일이죠.

 


다양한 노동, 같은 비정규직, 각자의 목소리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노동조합에서조차 문화예술노동자를 뮤지션이나 예술인, 창작자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영화노조라고 하면 뭔가를 영화로 만들 수 있는 단위라고 생각하는 동지들이 꽤 많았더라고요. 투쟁 현장에서도 문화예술은 연대하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같은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라고까지 생각을 안 했던 거죠.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 처음 결합할 때 당사자로서 참여한다는 게 되게 컸어요. 어떻게 보면 그전까지의 활동은 계속 다 연대로 인식됐던 것 같은데, 저 역시 비정규직이고 우리 현장의 사정을 충분히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하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까 참여한 동지들이 서로의 사정과 현장을 알게 되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이 생긴 것 같아요.

우리 사회의 모든 노동자가 비정규직 운동의 당사자일 수 있다는 걸 구체적으로 서로 아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각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도 있을 거고요. 최근에는 플랫폼도 다양해지고, 저희 같은 경우만 해도 하나의 회사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하나의 사업장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활동하는 거와는 다른 양상이죠. 그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디에든 있고 갈수록 많아지고, 그들의 목소리는 운동에서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해요. 조직이 작든 크든, 소수이든 다수이든 각자의 의견을 표출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임을 다하고 다시 카메라 뒤에 설 수 있기를


예전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업종 폐기투쟁하면서, 공공운수노조 순회투쟁에 함께한 적이 있어요. 버스, 의료, 저희가 같은 차를 탔는데 해고된 버스 동지가 운전을 하셨어요. 그날 버스 한 차례 모는 건데 근 7년 만에 핸들을 잡는다면서, 정복을 입고 흰 장갑까지 딱 끼고 오셨죠.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루 버스 운전하는 건데도, 그렇게 하시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저도 현장에서 일했던 지가 5년쯤 지난 때였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카메라 뒤에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돌아보게 됐어요.

언젠가부터 개봉되는 영화들은 기를 쓰고 보려고 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저 현장에 있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아요. 크레딧에 올라가는 이름 보면서 저 사람은 계속 영화를 하는구나, 나는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죠. 영화일이라고 하면 보통 감독, 연출에 대한 인식이 많아요. 처음 20대 초반에는 저도 영화를 하고 싶다, 감독이 돼야지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촬영감독협회라는 데서 기술적인 것들을 배우고 현장으로 갔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굳이 감독이 아니라도 영화 만드는 현장에서는 수십 명이 일을 하고 있고, 그렇게 각자의 영화를 만드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영화는 여타 생산품들이랑 달리 끝날 때 엔딩크레딧에 참여한 사람 모두의 이름이 나와요. 그걸 잘 보면, 영화노동자들이 어떤 일을 한다는 걸 대략 짐작할 수 있죠. 저도 십년 넘게 촬영일을 해왔는데, 영화를 계속하려면 적어도 밤새는 일이 없어야 되고 현장이 좀 더 나아져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던 것 같아요. 진짜 밤새는 게 싫었거든요. 나갔다 하면 맨날 밤새니까. 영화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노조 활동도 하고 시간 줄이자고 얘기하고 그랬죠.

위원장 임기가 내년 2월까지예요. 현장에서 일 안 한 지가 7년이 다 되어가고 있어서, 현장의 이슈랑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도 있어요. 조명, 촬영 쪽에서 위원장을 했으니까, 다음에는 준비단계 업무가 많은 대표적인 부서가 미술팀인데… 그쪽에서 위원장이 나오고, 그러한 현장에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표출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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